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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 김건영 교수] 중재의료기기의 개발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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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태영
작성일 2026-01-12 조회수 60

규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

분당서울대병원

김건영 교수

한국의 중재의료기기 산업은 세계적인 임상 수준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저수가 체계와 경직된 보험 등재 시스템이라는 구조적 장애물로 인해 국산화와 혁신 기기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에만 매몰되기보다 이스라엘의 요즈마 펀드 사례처럼 국가와 민간이 개발 초기 단계의 위험을 공동 분담하는 투자 플랫폼을 구축하고, 임상 현장의 아이디어를 산업화로 연결하는 전문 중개 조직의 제도화 및 단계적 보험 급여 체계를 마련하는 등 임상 역량이 산업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중재의료기기의 개발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규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


대한민국의 의료 수준, 특히 중재의학 분야의 임상 술기 역량은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에 속한다. 

고난도 시술의 성공률은 주요 국제 학술지에서도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짧은 시간 안에 복잡한 시술을 수행하는 한국 의료진의 역량에 해외 의료진이 놀라는 일도 드물지 않다. 실제로 한국의 중재 시술을 배우기 위해 국내 병원을 찾는 해외 의료진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시선을 시술장 테이블 위로 옮기면 다른 현실이 보인다. 카테터, 가이드와이어, 스텐트, 혈관 확장용 풍선 등 시술의 핵심을 이루는 기기 대부분이 다국적 기업의 로고가 찍힌 수입품이다. 최근에는 낮은 단가를 이유로 수입 물량 자체가 제한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 필요한 시점에 원하는 기기를 사용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의료진은 창의적인 술기와 대안을 통해 환자를 치료해 나가고 있지만, 의료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한국에서 최적의 치료에 필수적인 의료기기 접근성이 제한된 현실은 씁쓸함을 남긴다.


‘K-바이오’와 ‘K-의료’가 주목받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중재의료기기 분야에서 국산화와 신개발이 더딘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에서 체감하는 장벽은 단순한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 중재의료기기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단일하지 않지만, 그 핵심에는 인허가 이후 시작되는 보험 등재 단계에서의 구조적 제약이 자리하고 있다. 이 제약은 개발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며, 중재의료기기 혁신의 속도를 체계적으로 늦추고 있다.


1. 기존 시술 행위를 유지한 채 기기를 개선하는 경우: 만성적 저수가의 덫


중재의료기기 개발의 상당수는 기존 시술 행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기의 구조, 재질, 조작성을 개선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허가 이후 보험 등재 자체는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국내 보험 체계에서는 중재의료기기가 치료재료로 분류되며, 기기의 종류에 따라 이미 수가가 정해져 있다. 이 수가는 오랜 기간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어 왔고, 실제 개발 비용과 품질 개선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결과 중소 개발사는 충분한 마진을 확보하기 어렵고, 국산 기업은 개발 자체를 주저하게 된다.

외국 기업의 입장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동일한 제품을 해외 시장에서는2–3배 이상의 수익으로 판매할 수 있는 반면, 한국 시장에서는 원가 보전조차 불확실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외국 기업은 한국에 최소한의 물량만 배정하거나, 아예 수입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러한 만성적 저수가 문제는 과거 리피오돌 공급 중단 사태에서 이미 전면적으로 드러난 바 있으며, 현재도 경피적 위루관, 담석 제거기 등 여러 중재의료기기에서 반복적인 공급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산 기업은 이윤을 낼 수 없어 단순한 기기조차 개발을 꺼리고, 외국 기업은 국내 공급을 축소하거나 철수하는 악순환이 고착화되고 있다.


2. 새로운 카테고리의 기기가 등장하는 경우: 허가 이후의 장벽

두 번째 유형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카테고리의 중재의료기기가 등장하는 경우다. 

이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통과한 이후, 보험 등재 단계에서 훨씬 큰 장벽에 직면한다. 바로 신의료기술평가다. 새로운 기기가 새로운 시술 개념을 수반할 경우, 보험 등재를 위해서는 무작위 임상시험을 포함한 높은 수준의 임상 근거가 요구된다. 문제는 이러한 요구가 이미 인허가 단계에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소모한 이후에 다시 부과된다는 점이다. 국내 중재의료기기 개발의 주체가 대부분 중소기업이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개발사와 의료진 모두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 과정에서는 실질적인 매출 발생이 거의 불가능하며, 개발사는 장기간 연구를 지속하기 어렵다. 그 결과 상당수 기술이 시장에 진입하기도 전에 소멸된다.

새로운 카테고리의 중재의료기기는 기존 시술의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치료 접근 방식 자체의 변화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보험 등재 과정에서는 이러한 임상적 전환보다는, 단기간에 계량화 가능한 지표 중심의 근거가 요구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로 인해 개발사는 허가 이후에도 추가 임상 자료를 준비해야 하며, 이는 시간과 비용 부담을 크게 가중시킨다.


중재의료기기의 혁신은 빠른 임상 피드백과 반복적 개선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허가와 보험 등재가 서로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현행 구조에서는, 하나의 기기를 임상 현장에서 검증하기까지 지나치게 긴 시간이 소요된다. 이로 인해 기술 발전의 속도는 임상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더욱이 국내에서 개발되는 다수의 중재의료기기는 한국의 의료 환경과 보험 체계를 전제로 설계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국내 개발사가 해외 시장을 우회로로 선택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혁신 기술은 제도적 장벽 앞에서 소멸되고, 그 부담은 다시 임상 현장과 환자에게 전가된다.


해외에서의 돌파구: 이스라엘의 사례


해외에서는 중재의료기기 개발의 구조적 장벽을 다른 방식으로 우회해 온 사례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기업이 이스라엘의 Galil Medical이다. Galil Medical은 암 치료용 냉동소작(cryoablation) 시스템을 개발한 벤처 기업으로, 설립 초기부터 자국 내 기술 인큐베이터와 벤처투자 생태계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대표적 투자 지주회사인Elron Electronic Industries 계열의 투자 및 기술 상업화 네트워크와 연계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Elron은 이스라엘 하이테크 산업의 산파 역할을 한 기업으로, 다양한 첨단 분야(의료기기, 방위산업, 반도체, 정보통신 등)에서 30개 이상의 스타트업과 기업을 설립·육성하였다. Galil Medical은 설립 초기부터 내수 시장보다는 미국FDA 승인과 글로벌 상용화를 목표로 임상 및 개발 전략을 설계했고, 이후 비교적 이른 시점에FDA 승인을 획득하며 냉동소작 시스템의 성공을 일구어냈다. 이후 2016년 영국의 BTG plc에 80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에 인수되었고, 냉동소작기술은 인터벤션 종양학 분야의 주요 포트폴리오로 편입되었다. 이는 특정 기업의 성공이라기보다,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한 개발·투자 구조가 작동한 결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유사한 구조는 미국과 유럽의 중재의료기기 산업에서도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예를 들어, 인터벤션 종양학과 구조적 심장질환 분야에서는 다수의 혁신 기기가 벤처캐피털과 전략적 투자자의 자본을 바탕으로 장기간 개발되었다. 미국의 구조적 심장질환 기기들은 대개 소규모 스타트업 단계에서 출발했지만, 초기부터FDA 규제와 보험 환경을 전제로 임상 전략을 설계했고, 이후 대형 의료기기업체에 인수되거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시장에 안착했다. 유럽에서도 새로운 기기가 단일 국가의 보험 체계에 의존하기보다는, 다국가 임상과 글로벌 유통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들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은 명확하다. 개발 초기 단계에서 모든 위험을 중소기업과 임상의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기술 가능성이 확인되면 일정 규모의 자본과 전문성이 함께 투입되는 중개 구조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투자자는 단순한 자금 제공자가 아니라, 규제·임상·시장 전략을 함께 설계하는 주체로 기능했다.


한국에 필요한 조건


이스라엘 의료기기 산업의 성장 배경에는 개별 기업의 성공을 넘어서는 제도적 토대가 존재한다. 

그 출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1990년대 초 도입된Yozma Program이다. Yozma는 정부 자금을 마중물로 활용해 민간 벤처캐피털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 프로그램으로, 단순한 연구비 지원이 아니라 투자 구조 자체를 설계한 정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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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zma의 핵심은 정부가 초기 자금을 출자하되, 운용은 민간이 담당하고, 성과가 나면 민간이 정부 지분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한 구조였다. 

즉, 초기 기술 단계, 특히 아직 매출이 없고 실패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국가가 위험을 일정 부분 흡수하는 것이며, 의료기기와 같은 고위험 분야에서는 이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단기간에 벤처캐피털 생태계를 구축했고, 이후 정부는 점진적으로 직접 개입을 줄이며 민간 중심의 투자 시장으로 이행했다.


중재의료기기의 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K-의료의 근간을 뒤바꾸고 규제를 느슨하게 해줄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에 그 누가 ‘그렇다’라고 쉽게 답할 수 있겠는가? 중재의료기기 산업에 가장 큰 족쇄가 되는 것은 분명히 규제일 수 있겠지만 규제 자체를 수술대에 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한국의 중재의료기기 산업에 필요한 것은 허가 이전과 이후의 불확실성을 흡수할 수 있는 중간 지대이다. 기술 인큐베이터 제도는 ‘정부가 직접 제품을 만드는’ 모델이 아니다. 그것은 개발의 위험을 개인과 중소기업에만 전가하지 않는 구조, 그리고 기술 가능성이 있는 초기 단계에서 국가와 민간이 함께 위험을 분담하는 플랫폼의 존재다. 한국의 중재의료기기 산업이 직면한 문제 역시 이 지점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모델의 출발점은 중재의료기기 개발을 단순한 연구개발 과제가 아니라 장기적 산업 프로젝트로 인식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영 펀드 또는 대기업이 운용에 참여하는 의료기기 전문 투자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 플랫폼은 개별 기업에 단기 과제를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술 가능성과 임상적 필요성이 확인된 프로젝트에 대해 중·장기 자본을 투입하고, 허가 이후의 불확실성까지 함께 감내하는 구조여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임상–개발 중개 조직의 제도화다. 

임상 현장의 문제의식이 곧바로 제품 개발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이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임상의의 아이디어를 기술 사양과 개발 로드맵으로 번역하고, 규제와 보험 환경을 고려해 초기 단계에서부터 전략을 설계하는 전문 조직이 필요하다. 이는 병원 내 기술이전 조직의 기능을 확장한 형태일 수도 있고, 독립된 중개 플랫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역할이 개인의 헌신에 의존하지 않도록 제도화되는 것이다.


보험 제도 역시 이러한 구조적 전환을 전제로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모든 근거를 허가 이전에 요구하는 방식은 중재의료기기의 점진적 혁신과 양립하기 어렵다. 제한적 사용, 조건부 급여, 사후 데이터 축적과 같은 단계적 접근을 통해, 임상 현장에서의 검증과 산업적 성장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임상 역량이 아니라, 그것을 산업으로 연결하는 구조다. 그러나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 성과는 결국 해외 기업의 제품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밖에 없다. 필요한 것은 규제의 완화라기 보다는, 임상 역량이 기술과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위험을 분산시키는 구조다. 중재의료기기 개발의 성패는 이제 개별 연구자의 열정이 아니라, 이러한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적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