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건강과 보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분야가 바로 생명과학입니다. 우리나라도 생명과학 분야에 많은 투자와 혁신을 일으키며, 바이오 경제 시대를 열고 있는데요.
오늘 과학의 달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바이오 분야 전문 연구기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장성 원장과 함께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자세한 얘기를 나누기 전에 우선 시청자에게 간단한 인사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어떤 곳인지 직접 소개해 주시죠.
[김장성]
사이언스 투데이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김장성입니다. 저희 생명공학연구원은 대한민국 바이오 R&D 허브이자 바이오 경제를 선도하는 생명공학 분야의 국내 유일의 국책 연구기관입니다.
정부는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3대 성장 동력 산업 중 하나로 생명공학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있는데요. 생명공학연구원은 1985년 설립 이래 37년간 국가·사회적 연구개발 수요에 맞춰 국내․ 외 연구거점 마련, 기초 원천 연구 및 R&D 인프라 제공, 인력양성과 바이오산업 생태계 조성 등을 통해 국가 생명과학 기술혁신과 바이오산업의 발전을 선도해왔습니다.
[앵커]
생명공학 분야의 유일한 국책 연구기관이자 허브 역할을 해온 기관이라고 소개해 주셨는데요. 그런 만큼 많은 연구 성과가 있겠지만 떠올리기 쉽게 최근에 거둔 대표적인 성과 몇 가지 알려주시죠.
[김장성]
먼저 저희 연구원은 2019년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 기관 차원의 신속 총력 대응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세계 4번째로 코로나19 영장류 감염 모델을 개발하고, 백신·치료제의 효능평가를 신속하게 지원함으로써 바이오·제약기업이 조기에 임상에 진입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등 백신·치료제 개발의 실질적인 허브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다양한 유전 질환 치료에 사용 가능한 초소형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유전자도 교정 과정을 거치면 질병 치료에 활용할 수 있고,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를 교정하는 도구를 말합니다. 유전자 교정 치료의 핵심은 유전자를 원하는 체내의 세포로 전달하는 것인데, 이때 아데노연관바이러스라는 바이러스 벡터를 이용하여 체내로 유전자를 전달합니다. 기존에 개발된 대표적인 유전자 가위로는 'CRISPR-Cas9'가 있지만, 아데노바이러스가 전달할 수 있는 유전자 크기보다 훨씬 커서, 가장 대중적인 기술임에도 유전자치료제로서 그 활용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런 단점을 해소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로는 Cas9보다 크기가 1/3로 작은 'CRISPR-Cas12f1' 시스템이 있지만, 유전자 교정 효율이 매우 낮아 실제적인 치료제로서의 매력이 없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희 연구원은 앞서 말씀드린 두 가지 유전자 가위의 장점을 살려 높은 교정 효율과 안정성을 확보한 유전자 가위 기술 'CRISPR-Cas12'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교정하고자 하는 유전자 표적을 인식하는 가이드 RNA를 최적화하여 Cas12f1 시스템의 교정 효율을 Cas9 수준까지 향상시킨 것인데요. 또한 CRISPR 유전자 가위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처음 의도하지 않았던 다른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는 오프-타깃(off-target) 문제와 관련하여 Cas9보다 오프-타깃이 절반 이하로 발생함을 입증함으로써 유효성과 안전성을 고루 갖춘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기존의 유전자 가위를 더 정교하게, 더 안전하게 개선해냈다는 건데, 그렇다면 실제 유전 질환 치료에는 언제쯤 쓰일 수 있는 건가요?
[김장성]
현재 'CRISPR-Cas12' 기술은 국내 바이오 벤처 회사에 기술이전 되어 여러 유전병에 적용하며 실용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유전자가위 기반의 유전자치료제 개발이 아직 초기 단계로 비임상, 임상 등에서의 기준을 새롭게 마련해야 하는 이슈가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들이 체감하실 수 있는 치료제 수준의 실용화를 위해서는 아직 후속 연구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어야 합니다.
[앵커]
좋은 소식을 들으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겠군요. 지금 선진국들은 하나같이 바이오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꼽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요. 바이오산업이 왜 이렇게 중요한지, 또 앞으로 주목해야 할 바이오 기술은 뭔지 알려주시죠.
[김장성]
바이오 기술은 인류의 4대 난제라고 할 수 있는 건강/보건, 환경, 에너지,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기술이며, 타 기술과의 융합의 중심에 있으며 융합 기술을 통한 신시장 창출의 효과가 매우 크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향후 주목해야 할 분야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합성생물학과 바이오 파운드리, 마이크로바이옴라는 기술입니다. 우선 합성생물학은 다양한 부품을 조립해 자동차를 만들듯, 단백질과 효소를 부품으로 자연에 없던 생물체를 만들어내는 기술이고, 바이오 파운드리는 AI, 로봇 등을 합성생물학에 적용시킬 수 있는 생물학 실험 및 제조공정 고속 자동화 플랫폼입니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합성생물학을 국가 핵심 기술 분야로 중점 육성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이미 수백 개의 스타트업이 설립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바이오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바이오 제조 혁신을 위해 합성생물학 생태계를 조성하고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저희 연구원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합성생물학을 미래 중점분야의 하나로 선정하고 전문 연구조직인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을 운영해오고 있으며, 관련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파일럿 규모의 연구용 바이오 파운드리를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글로벌 바이오 파운드리 연맹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앵커]
우선 합성생물학과 바이오 파운드리를 설명해주셨는데요. 마이크로바이옴은 뭔가요?
[김장성]
네, 마이크로바이옴이란 특정 환경에 존재하는 미생물과 미생물의 유전 정보를 의미하는데요, 인체 마이크로바이옴은 중요한 면역작용에 관여하며 약물에 대한 반응을 조절하고 신진대사에 큰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제2의 장기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특히 장내 세균 불균형이 소화기 질환뿐만 아니라 비만, 당뇨, 자폐증 등 다양한 질병의 위험성을 높이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글로벌 제약사를 비롯한 유수의 기업들이 마이크로바이옴 기술에 대한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는 국가연구개발사업에서 도출되는 생물자원을 기탁 받아 관리하는 생물자원센터가 있습니다.
이곳에선 2016년 11월부터 한국인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뱅크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는데요. 현재까지 임산부, 신생아, 소아 청소년, 성인, 노인 등 생애 주기별로 800명 이상의 분변 시료로부터 실물 자원을 확보하여 연구 인프라로서 관리하고 활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앵커]
바이오산업이 왜 중요한지, 또 주목해야 할 기술은 뭔지 설명해 주셨는데요. 바이오산업계에서 우리나라의 위상도 궁금합니다. 코로나 시기에 우리 바이오산업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특히 앞서가는 분야는 뭔가요?
[김장성]
네, 일단 잘 아시다시피 코로나19 팬데믹은 국내 바이오산업 생태계 성장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감염병 대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백신과 치료제 분야에서 국내 기술 상용화가 되지 못한 아쉬움은 남는 부분이지만, 코로나19 진단 시약은 전 세계 170여 개 국가로 수출되는가 하면, 우리나라가 제안한 코로나19 등 감염병 진단 기법이 국제표준화기구에 등록되어 국제 표준으로 제정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론 세계적인 수준의 바이오의약품 위탁 생산 역량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개발된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의 글로벌 생산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특히 바이오의약품 수탁생산 1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 최대의 생산시설을 보유하기 위해 공장 등 인프라를 증설하며 그 위상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의 생산공정, 효소 공학, 생물자원 탐색 등의 응용기술과 첨단 재생 바이오 분야의 줄기세포 활용 치료 기술과 세포치료제와 같은 첨단 바이오의약품 기술 그리고 합성생물학 분야의 미생물 개량 및 대량생산 기술 등에서 상대적인 강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앵커]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우리는 여전히 패스트 팔로워 즉 빠른 추격자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바이오산업을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요?
[김장성]
바이오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혁신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합니다. 즉, 고위험⋅ 고수익의 연구개발 성과들이 끊임없이 창출되어야 하는데요.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진단 기기 시장을 통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하였으나, mRNA 백신과 같은 고위험-고수익 연구개발 분야에서 기술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우선 10대 국가 필수 전략기술의 하나인 첨단 바이오 분야의 연구 개발을 위해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실용화가 많이 성공한 대표적인 조직인 국방성 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벤치마킹하여 한국형 첨단 바이오 연구 지원단 ARPA-B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Bio)의 운영을 제안합니다.
우수한 연구 경험과 역량,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갖춘 프로그램 매니저(PM)와 국가 차원의 리더십과 연구기반을 갖춘 바이오 전문기관의 개방형 협력을 통한 지원을 받는다면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사업화되는 확률이 매우 높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앵커]
기술 개발뿐 아니라 실용화까지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이제 원장님에 대한 질문도 드릴게요. 원장님께서는 연구자 시절 항암제 개발에 힘쓰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이 분야를 선택하게 된 건지, 또 기억에 남는 성과는 무엇인지 들려주시죠.
[김장성]
제가 대학을 진학한 198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에선 유전공학 붐이 한창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포메이토, 라이거와 같은 유전자 재조합 기술들이 일반에 소개되고, 유전공학이 향후 10년 이내에 세상을 바꿀 거라는 이야기들이 미디어에 노출되던 시기였습니다. 학창 시절 평소에도 생물 쪽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런 것들에 영향도 받아 유전공학을 연구할 수 있는 분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암의 성장이나 전이를 연구하는 암 생물학 분야에서 20여 년의 연구 경력이 있습니다. 이 기간 기억에 남는 성과라면, 혈관신생억제 활성을 갖는 바이오 항암제를 우리나라에선 최초로 미국 FDA에서 국제 임상시험 1상 시험 승인을 받은 것을 꼽고 싶습니다.
미국 FDA 임상 1상을 준비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조 품질관리부터 임상 프로토콜까지 굉장히 많은 자료가 필요한데요, 이런 자료를 준비하는 것 자체가 값진 경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노력들이 승인이라는 성과로 보상받게 된 것이 아직도 굉장히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앵커]
이제는 과학자로서, 기관장으로서 생명공학 연구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계신데요,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도 들려주시겠어요?
[김장성]
말씀하신 것과 같이 저희 생명연은 국가 필수 전략 기술 중 하나인 첨단 바이오 분야와 국가 아젠다 해결 기술을 개발하고, 산학 연병을 지원하는 인프라 역할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바이오 의약 분야 신약 개발 대형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그동안 30여 년 축적된 연구원 각 부분의 기반 기술과 관련 사업을 연계하여, 기능별로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 구축을 전담하는 매트릭스형 R&D 사업으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린 유전자치료제, 마이크로바이옴, 세포치료제 등의 첨단 바이오의약품의 핵심기술 확보를 통해 차세대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으로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수월성을 가진 우수 성과에 대해 장기간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국내외 연구 주체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신약 분야에서 생명연 브랜드로 각인될 수 있는 유의미한 성과를 창출하여 국가 혁신 생태계에 기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우리나라가 명실공히 바이오산업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앞으로도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장성 원장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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