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왕재 서울의대 교수
보건 의약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부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R&D 정책을 총괄 조정하고, 자율적으로 정책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한국형 NIH(미국국립보건원)를 설립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이왕재 서울의대 교수는 6월 27일 코엑스 그랜드볼룸 103호에서 열린 '미래의료 메가트렌드' 주제 HT(Health Techology) 포럼에서 "각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R&D 정책을 통합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총괄 조정기구가 필요하다"면서 한국형 NIH 설립을 강조했다.

NIH는 산하에 국립암연구소·국립독성연구소·국립정신건강연구소 등 20개 연구소와 7개의 연구센터를 보유한 세계 최대 보건의료 연구기관. 한 해 예산만 309억 달러(약 32조원)에 달하며, 1200명의 전문연구진과 4000명의 박사 후 연구원 등 90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만성질환·감염병·맞춤의학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이 교수는 '미래의료를 위한 바람직한 국가 HT R&D 거버넌스 개편 방향'을 통해 "NIH는 미국의 보건의료 R&D 예산의 90%를 사용하는 집중형 구조이면서도 민간전문가가 참여해 운영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정부·민간 융합형 구조"라며 "영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 역시 HT 정책을 총괄하는 정책 조정기능기구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요 선진국의 통합조정 구조와는 달리 한국은 각 부처별로 정책이 분산돼 있고, 부처간의 조정기능도 미약한 실정이라는 것.

올해 국내 R&D 예산은 11조 7000억원에 달한다. 정부 부처별로는 미래창조과학부가 4조 8933억원(41.9%)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산업통상자원부 25.2%(2조 9416억원), 중소기업청 7.5%(8805억원), 농업진흥청 3.9%(4518억원), 해양수산부 3.7%(4346억원), 국토교통부 3.4%(4001억원), 보건복지부 3.4%(3986억원), 교육부 3.1%(3656억원), 환경부 2.2%(2592억원) 등이  잇고 있다.

전문위원회 별로는 첨단융합분야가 3조 4256억원으로 가장 많고, 주력기간분야 2조 9553억원, 생명복지분야 1조 9053억원, 에너지환경분야 1조 8680억원, 거대공공분야 1조 5206억원 등이다.

생명복지분야 R&D 예산(1조 9053억원)의 경우 가장 관련이 많은 보건복지부가 20.6%(3926억원)를 배정받았으나 미래부(24.6%, 4678억원)·농진청(23.7%, 4518억원)에 비해 오히려 재정 규모가 작은 실정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연구지원기관은 정부 정책의 집행·관리 기능에 치중해 자체 재정 기획이나 민간에 대한 연구지원기능이 미약하다"며 "연구지원기관의 민간주도 운영 원칙과 권한 이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간 전문가의 폭넓은 참여와 실직적인 권한 부여도 미흡한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선진국들은 2000년 이후 HT의 전략적 육성을 위해 민간 전문가 집단의 폭넓은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며 "HT R&D 전담 투자기관·분야별 문제 해결·수요자 중심의 R&D 정책 집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까운 경쟁국가인 일본의 변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도 언급했다.

이 교수는 "일본 아베 수상은 지난 4월 의료관련 R&D 예산 집행을 일원화함으로써 예산 낭비를 막고, 첨단의료기술 및 의료기기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을 벤치마킹한 일본판 NIH 구상을 밝혔다"면서 "문부성·후생성·경제산업성 연구예산의 일부를 모아 신설하는 독립행정법인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판 NIH는 의료분야 연구개발에 관한 종합 전략을 수립하고, 암·치매 등의 질환과 재생의료를 비롯한 최첨단기술 연구 분야의 목표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이 교수는 "8월 경에 추진본부를 설치하고, 상세한 계획을 마련해 2015년 설립할 예정으로 안다"고 덧붙였다.